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픔을 억지로 참으며, 또 자기의 고집도억누르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좋아요! 할아버

지 말씀대로 하겠어요!”말을 마치자, 별안간 다정 다감한 말투로 강주 아가씨에게 조용

히 말했다.”임씨댁 아가씨! 우리들은 이렇게 옥신각신 싸울 일이 아니었어! 이분을 매장

해 드리고 나서 천하제일방 방주 무영객을 찾아내서 원수를 갚아 드리는 것이 옳은 길일

거야!”강주 아가씨는 조용히 한참 동안이나 그 말을 되새겨 가면서 듣고있었다. 조금 전

까지도 현도노인의 말에 수상쩍은 점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최후에 와서는 실망하

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노인은 무슨 배짱을 먹고 무슨 꿍꿍이속을 가지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되는 대로 대꾸했다.”네! 그런데 무덤을 판다

는 건 저희들로서는 대단한 일이군요!”만빙여 아가씨는 처참한 표정으로 생끗 웃었다.

“그럼, 아가씨! 어서 시작해요. 저리 같이 가서 무덤을 파기로 하지.”말을 마치자 만빙여

아가씨는 몸을 훌쩍 날려 단숨에 굵직한 잣나무가 서 있는 앞에 우뚝 섰다. 칼끝에서 서

슬이 시퍼런 광채가 쉴 새없이 번쩍번쩍했다. 무덤을 파기 시작한 것이었다.강주 아가씨는

모든 일이 수상쩍다는 눈초리로 현도노인을 다시 힐끗 흘겨 봤다. 뭣인가 똑똑히 따져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런데 바로 이때 현도노인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재촉을 했다.”빨리

가봐라! 이 무덤은 응당 너희들 둘이서 손수 파야 할 무덤이다!”강주 아가씨는 내심 수상쩍

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나, 노인이 끝까지 똑똑히 말해 주려고 하지 않으니, 강경하게

따져서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이 몸을 날려 나무 밑으로 건너갔다.오른손을 번

쩍 쳐들어서 왼편 소맷자락 속으로부터 한 자루의 칼을 살며시 집어냈다.그 칼은 온통 새빨간

빛깔이었다. 눈부신 태양 광선이 칼날에 비쳐 새빨간 무지개를 뻗쳐 내는 듯, 만빙여 아가씨

의 칼에서 발사되는 새파란 광채와 찬란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두 아가씨들은 꼭같이 내

공에 있어서 놀라운 경지에 도달한 여자들이었다. 거기다 또 손에 각각 보기 드문 보검을 한

자루씩 잡고 있으니, 땅을 파는 일쯤은 아무 힘도 드는 일이 아니었다.뜨거운 차 한 잔을 마실

락말락한 시간에 아가씨들은 벌써 길이가 다섯 자 이상이나 되고 폭이 석 자나 되는 깊숙한

구덩이를 파 놓았다.구덩이가 다 파진 것을 보자, 현도노인은 손으로 품속을 더듬더듬해서 옥

으로 만든 조그만 상자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다시 그 상자갑 속으로부터 마치 호박(琥珀)

처럼 반짝반짝하는 풀잎 하나를 꺼냈다.그것은 길이가 불과 한 치, 새빨간 빛깔의 영지(靈芝)

라고 하는 풀인데, 갑자기 보랏빛 광채가 눈부시게 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