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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중이었다. 죽을 힘을 다해서 웅덩이 깊은 물속으로부터 간신히 기어 나왔다. 전신에는 여전

히 털끝 만한 힘도 없었다. 더군다나 온 몸이 이상하게 근질근질 가렵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가씨는 그제서야 극약의 독성(毒性)이 발작을 시작하는 줄 알고, 그때까지 겪어온 자초 지종을 어

렴풋이 생각해 봤을 때, 어쩔 도리가 없어 엉엉 소리치며 울기 시작했다.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슬픔

에 젖어 흐느껴 울고 있을 때, 아가씨는 홀연, 흐리멍텅한 정신 상태 속에서도 자기 신변 가까이 어

떤 사람의 두 발이 버티고 서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아가씨는 깜짝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이 두 발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천하제일방의 방주 무영객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으면 자기

가 미워하면서도 잊을 수 없는 그리운 청년 소세옥이란 말인가?’아가씨의 시선은 그 두 개의 발을

더듬기 시작했다. 푸른빛 신에 흰 버선, 그리고 회색빛 장삼 – 다시 위로 더듬어 올라갔다. 축 늘어진

두 손. 그것이 얼마 안 있다가 가슴 앞에까지 늘어진 백설같이 흰수염을 쓰다듬고 있는 것을 발견했

다.’이것은 완전히 딴사람이구나!”그리고 나이가 굉장히 많은 어떤 노인이구나!’이런 판단을 내리

자, 매약화 아가씨는 별안간 대담하게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하나의 자상한 미소를 띠고 있는 얼

굴이 바로 아가씨의 얼굴 앞에 있었다.그 노인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천천히, 그리고 자못 정중하

게 입을 열었다.”아가씨! 왜 이렇게 울고 있는 거요? 무슨 괴로운 일이라도 있소?”흐느끼고 있던

매약화 아가씨는 노인의 자상하고 친절해 뵈는 모습을 보이는 순간, 으아! 하고 방성 통곡했다.

노인은 몸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날카로운 광채가 번쩍번쩍하는 두 눈동자가 매약화 아가씨의

얼굴을 유심히 더듬고 있었다.차츰차츰, 노인의 얼굴에는 이상함을 금할 수 없다는 기색이 드러

났다. 또 한 번 점잖게 물었다.”아가씨! 무슨 극약의 기독(奇毒)에 중독이 된 게 아니오?”매약화

아가씨는 그대로 흐느끼기만 하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해 보였다.노인은 장탄식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만약에 이 노부의 시력이나 추측이 틀림없다면, 아가씨가 중독상태에 빠진 것은 천하에

서 가장 지독하다는 극약 적련독(赤煉毒)이 아니오? 한 번 중독 상태에 빠져서 한 시간만 경과하

면 전신이 썩어 문드러져서 귀신같이 추악한 꼴로 변하는 그 무시무시한 독약! 어떤 몹쓸 놈이

이렇게 지독한 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