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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바로 자기 자신이 목마르게 안타깝게 찾아다니고 있는 그 사람인 줄을 알

지 못했다니?이제 와서 곰곰이 생각하면, 소세옥이 자기를 알은 체도 하지 않은 까닭은 반드시 자기

부친이나 오라버니를 미워하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느껴졌다. 그것은 둘째 문제고, 가장 중요한 까

닭은 역시 그 천하 일색으로 생긴 강주라는 아가씨 때문이었을 것이다.자운 아가씨는 악몽(惡夢)에

서 깨어난 것 같았다. 구곡간장이 녹아 나는 것만 같았다. 아가씨의 눈앞에는 둘이서 어렸을 때 함께

보낸 가지가지 추억이 번갯불처럼 스쳐 나갔다.땅이 꺼지도록 긴 한숨을 내쉬며 세심신니에게로 고

개를 돌이키고 힘없이 말했다.”스승님, 우린 그만 돌아가죠. 저는 즉시 암자로 돌아가겠어요.”52. 진

퇴양난유사고 아가씨는 자운 아가씨가 극도로 실망하고 괴로워하는 기색을 눈치채자,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심정을 꼭같이 실망시키고 괴롭게 만들어 주는 것만 같았다.마침내, 으아 소리를 지르

며 스승의 몸에 기댄 채 엉엉 울기 시작했다.아가씨의 애끓는 통곡 소리는 듣는 사람의 가슴을 미어

지게 했다.일개 처녀의 심정이란 복잡하고 미묘한 것이었다.유사고 아가씨는 한 번 소세옥이라는 청

년을 만나게 된 순간부터, 한 떨기 꽃송이같이 찬란하고 순결한 처녀의 아름다운 마음을 송두리째

고스란히 그에게 바쳤었다. 언제고 자신의 소원이 성취될 날이 있으려니 하는 어리석으면서도 천진

한 망상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그러나 이제, 자운 아가씨가 강주라는 또 하나 다른 아가씨의 존재 앞

실망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자, 자기 자신의 심정과 꼭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무술 실력으

로 보나 재간이나 용모로 보나, 혹은 가문이나 출신으로 따진다 해도 자기 자신은 강주나 자운 아가씨

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거리가 먼 존재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여태까지는 자기 혼자서만

어떤 희미한 불안 속에 살아왔지만, 이제 자운 아가씨의 모습을 보고 나니, 유사고 아가씨는 사태

심각하고 엄중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자신의 운명은 이미 ‘실패’라는 두 글자로

결정 되어 버린 것이라 생각했다.순진한 처녀의 희망이 짓밟히고 으스러져 버렸을 때, 그 괴로운 심

정을 발산시킬 수 있는 것은 울음뿐이다.그러나 세심신니나 자운 아가씨는 유사고 아가씨가 자기 스

승이 부상을 입게 된 것을 슬퍼해서 통곡하는 줄로만 알았다. 빨리 돌아가자고 졸라대던 자운 아가씨

도, 눈 앞에 통곡하는 여자를 모른 체 내버려두고 매정스럽게 발길을 돌려놓을 수는 없었다. 최소한

몇 마디 위로의 말이라도 해주고 이 자리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이때, 밤은 겨우 이경(更)을 지났